나는 그리스도 인 입니다.                                                  2015년 8월 10일

그 동안 나는 신앙의 길을 걸어 오면서 많은 방황과 갈래의 길에 있었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가고 있지만, 믿음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로 붙든다고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주님의 은총인 것. 주님이 허락 하시지 않는 한 나는 믿음이 뜨거웠다, 차가 왔다 하며 살아 가고있다. 이 은총을 계속해서 인식하며 감사하며 살아 가는것이 그리스도인이요 우리 기독교 인들의 삶인 것이다. 

작년에 나는 안수 집사의 안수를 받고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직분도 맡고, 그에 걸맞는 생활을 하도록 노력한다. 새벽에 새벽기도, 우리 구역의 구역장으로써, 그리고 문화부의 부장으로, 안디옥 노인회 회장으로, 교회 Leadership의 일원으로 써, 교회를 이끌어 가는 일꾼으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있다. 이렇게 나는 신앙의 생활에 안정을 찾았다.

안수 집사로 안수 받은후 교회의 Leadership seminar 공부를 통해 우리는 믿음과 신앙의 문제를 갖고 토론과 공부를 하는 동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서 나의 신앙의 방황은 멈추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신앙의 방황은 2005년 은퇴 전후 시간의 여유가 생겨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 했는데, “부처예수”라는 책이 나의 손에 쥐어 주면서 외도가 시작 되었다. 부처를 알게 되었고, 타 신앙의 길들을 연구 해 알고, 방황 하면서, 철학에도 빠져보고, 얄팍한 지식의 진화론과 하나님이 만든 자연의 신비의 존재에 빠지며, 나는 과연 기독교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만이 하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라는 방황이 시작되었었다. 나는 공자와 유교를 공부 했었고, 불교의 심오한 진리에 심취도 했었고, 마호멨교와 진리도 알고자 노력도 했었다. 철학과 종교의 많은 서적과 그들의 삶과 주장 속에서 매력을 느끼며, 동의도 해가며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의 원리인 정자와 난자의 만남 속에서 태어난 우리들, 그리고 먼 옛 조상들의 역사들 속에서 예수를 알지도 못하고 태어나기 이전의 사람들의 구원 까지도 걱정하며, 기독교의 모순들을 이해 하려고 노력하며, 부정도 하였었다. 그러나 나의 깊은 뿌리인 하나님은 한번도 부인 하거나 의심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은 믿기 어려운 사실로 나의 마음 한구석에 항상 나를 흔들고 있었었다. 이렇게 30여년간 새벽에 일어나 읽고 기도하며 빠져 있던 나를 매우 혼돈 스럽게 만들고 방황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더이상 혼돈 속에 놓아 두시지 않았다, 드디어 예수님의 부활의 기적과 성령님의 능력과 역사를  찾았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 5병 2어 의 이야기에서는 장정만 5000명, 또 하나의 같은 사건인 식사 때는 장정이 4000명, 이렇게 많은 무리 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본다, 혈루 병이 낫고, 장님이 고침을 받고, 앉은 뱅이가 일어 서고, 문둥병이 깨끗해 지고, 귀신을 쫓아 내는 많은 기적을 베풀 때는, 쫓고 따르던 이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는, 못 밖으라고 소리치고, 수제자인 베드로까지도 세번씩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하는 이들을 보며, 인간의 어리 석음과 나약 함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한계와 믿음이 얼마나 보잘 것이 없는지, 나도 그 시대에 태어 낳으면 아마도 똑같은 행동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나약하고 불쌍한 이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순수히 죽음을 맞이 하신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이며, 이 일을 통해 우리는 드디어 하나님과 화해를 할 수 있게 되고, 거룩 하다는 즉 죄 사함을 받았다는 선물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까지 주셨다. 이 얼마나 큰 일이며 과연 우리는 이렇게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물론 없고,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죄인이고, 인간 쓰레기일 뿐이며 우리는 예수님을 못 박은 죄인이고, 주님를 배신한 사람들이며, 감히 용서도 구할 수 없는 죄인들이다. 그런데 왜? 기독교 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교회에 나아가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며, 찬양을 부르는 걸까?

여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긍휼과 사랑”인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의지로, 또한 자격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예수님이 부활 하시면서 기적이 일어 나기 시작 한다. 그 동안 예수님을 부인하고 흩어져 있던 무리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 나신다. 이것이 사실 일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가? 하며 의심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생기는 의문인 것이다, 어떻게 죽은 이가 그것도 칼에 찔리고 피를 흘리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난단 말인가? 그런데 그 분이 나타나셔서, 겁장이요 비겁한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본인의 못 자욱과 옆구리를 만져 보도록 하신다, 그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그래도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고, 확신이 없었으며, 변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이 보는 가운데 미래를 약속 하시며, 하늘 나라로 승천 하신다.

그 일이 있는 이후 몇몇 사람이 다락 방에 모여 기도를 한다. 여기에 주님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어, 사람이 방언을 하고, 변화하기 시작 하며, 담대히 예수님의 비밀을 밖에 나가 전도 하며, 병든 자를 고치고, 앉은 뱅이를 낳게 하고, 귀신을 쫓아 내며, 죽는 순간까지 주님을 전도 하며, 순교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이방인 까지도 성령의 은사를 받고, 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 까지도 예수님을 전도 하며 순교하여, 죽는다. 이게 어떻게 된일인가? 얼마전 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소리치고, 부인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예수님을 전도하고 죽기까지 외치며 다니는, 이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이 사람들은 모두 동시대 똑같은 사람들이다. 단지 전후의 시간으로 거슬려 올라 가면 예수님이 부활 하셨고,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 외에는 별반 다른 사건이 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이들은 바뀌었고, 확신과 믿음으로, 죽음을 마다하는 행동들을 하였다. 이 사실 앞에서 예수님은 부활 하셨고, 보혜사 성령님은 이들을 변화 시켰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는 죽은 사람이 살아 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고, 하늘나라에 올라 갔다는 사건도 믿을 수 없으며, 성령님이 역사 한다는 사실도 그냥 이야기로 들어서 믿는다면, 순진한 사람이나 아니면 바보 같은 사람일 것이다. 우리의 노력이나 각오로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 모든 사실을 믿고 내 목숨까지 내놓고 전도 하라면, 아무도 해 낼 수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 겁쟁이 였고, 믿음이 약하고, 그리고 사실을 숨기며, 살던 그들이 갑자기 변하여 전도하며 순교를 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 께서 변화 시켜 주셨다는 결론 밖에는, 다른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렇틋 우리는 연약하고, 믿음도 약하고, 죄에 빠져 우유부단 한 우리 들이지만, 주님의 은혜로 우리 입술로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 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 가셨다”는 고백을 하도록 하시면, 우리는 변화되고, 우리도 그들 처럼 주님을 찬양하고, 전도 하며, 하늘 나라를 연모 하며, 그 소망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거룩 함을 입고, 예수님과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다 얼마나 커다란 선물인가!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이고, 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은혜요, 믿음이고, 신앙 생활인 것이다.

예수님을 찾았다고, 이 비밀을 알았다고, 우리는 100% Christian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기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끈질긴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단련을 해야만 한다.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러 오셨고, 그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우셨을때, 모세는 능력이 없었고 할 수 없다고 피했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따랐고, 지팡이도 주셨고 그에게 능력을 주셨고, 아론도 옆에서 돕도록 하셨다. 이렇게 주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주님의 도움으로 우리의 처지와 능력에 관계없이 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령의 역사 하심을 보고 안다, 그러나 오히려 성령님이 역사 하시어 나를 100% 바꾸어 놓으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이고,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릴까 하는 걱정과  전적으로 그 일만을 해나갈 각오와 감당해낼 자신이 없는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주소서, 나의 삶에 변화를 주소서 하며 기도를 드리지만, 한 구석으로는 살살 조금씩 적당히 해 주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중용을 바라고 극과 극의 삶을 두려워 한다. 물론 우리가 원한다고 다 주님이 그렇게 해 주시지 않겠으나,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면 모세를 변화 시키듯이 우리도 그에 걸맞는 능력과 용기와 믿음도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우리 Christian과 믿지 않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묻지 않을 수 가 없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 구원자 이심을 알고 믿으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갖고 살아가며, 기도하고, 찬송하고, 교회를 다닌다. 이것이 다른 것이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여 100% 하나님 만 바라보며 사는 삶을 살아가지 못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을 찾고 의지 한다. 우리는 자신이 죄인인것을 고백하고 안다. 비록 매일매일 우리가 계속해서 실족하고 죄를 짖고있지만, 우리는 용서를 구하고 있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David도 부하의 여자를 탐하는 죄를 짖고, 그녀의 남편을 사지에 몰아 죽이는 죄를 지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실패 했지만, 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삶을 살았다.

이렇게 우리 기독교 인들은 예수를 알고, 닮아가는 삶을 소망하며 추구하는 삶을 살아 가는 사람들이지, 완벽하고 거룩한 삶을 살며 더 이상 죄를 짖지않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한 우리는 형제를 비판 할 수도 없고, 연약하여 죄의 구렁텅이에 계속 빠지고, 자기 삶에 이기와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죄인 이지만,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며, 예수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늘 회개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이며, 우리는 사랑과 긍휼의 삶을 포기 하지 않고 노력하며, 하나님을 만날때 까지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실패자인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사랑과 긍휼을 베풀기를 노력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을 알고 구원을 얻으며, 하늘의 소망을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인 것이다.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그대로 나의 삶에 있지만 하나님에 소망을 갖고, 그의 약속을 믿으며 계속해서 찬양하는 그러한 믿음의 사람 이다. 그래서 우리는 낙담하지 않고, 자신을 격려하며, 기도하며 소망을 지켜가는 그리스도인 이다. 무기력 속에 믿음이 뭍히지 않고 안개와 같은 우리의 삶속에서 찬양을 드리며, 침몰하지 않는 신앙의 배위에서 우리의 삶을 항해하며, 찬송 하리로다. 예수님 만나는 소망으로 살리로다. 아멘.

할렐루야 !!